신약 27권은 ‘선택’이 아니라 ‘정리’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의 367년 서신
수십 년간 가꾸어온 정원의 마지막 울타리
오랜 세월에 걸쳐 정성껏 가꾸어온 어느 정원을 상상해 보십시오. 처음에는 이름 모를 들풀과 꽃들이 뒤섞여 자라나기 시작했습니다. 정원사는 그중에서 향기가 가장 짙은 꽃을 앞자리에 심고, 그늘을 만들어주는 든든한 나무들을 중심에 배치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며 이 정원에는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산책로가 생겨났고, 어떤 식물이 이 정원의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지도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어느 화창한 아침, 정원사는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원의 입구에 팻말 하나를 세웁니다. 그 팻말에는 이 정원을 대표하는 식물들의 이름이 정갈하게 적혀 있습니다. 이것은 정원사가 어느 날 갑자기 새로운 꽃들을 발명해낸 것이 아닙니다. 이미 그곳에서 피어나고 사랑받던 식물들을 확인하고, 그 경계를 명확히 하여 정원을 찾는 이들에게 혼란을 주지 않기 위한 ‘정리’의 과정이었습니다.
성경의 역사에서도 이와 같은 ‘팻말’이 세워진 순간이 있었습니다. 서기 367년,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가 보낸 한 통의 편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편지에는 우리가 오늘날 사용하는 신약성경 27권의 목록이 최초로 완벽하게 등장합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시선으로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이것은 권력에 의한 ‘결정’이 아니라 오랜 시간 검증된 진리를 향한 공동체의 ‘발견’이자 ‘정리’였음을 알게 됩니다.
아타나시우스의 서신 — 합의를 기록으로 옮기다
1. 아타나시우스의 39번째 축제 서신 (서기 367년)
서기 367년, 당시 지중해 세계의 지성적 심장부였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는 펜을 들었습니다. 그는 당시 기독교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였지만,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습니다. 정통 신학을 수호하느라 인생의 3분의 1을 유배지에서 보냈고, "아타나시우스 대 온 세상(Athanasius contra mundum)"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가 매년 부활절을 앞두고 교구와 광야의 수도사들에게 보내던 ‘축제 서신’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혼란스러운 시대 속에서 길을 잃은 성도들에게 전하는 신앙의 이정표이자, 교회의 질서를 바로잡는 강력한 목회적 도구였습니다. 바로 이 39번째 서신에서, 인류 역사를 관통할 27권의 신약 목록이 처음으로 그 완벽한 모습을 드러내게 됩니다.
2. 주교의 독단이 아닌, 300년 예배의 기록을 백업하다
역사의 표면만 보는 이들은 아타나시우스가 자신의 권력으로 성경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내면에는 훨씬 더 깊은 인문학적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결코 존재하지 않던 목록을 창조한 ‘발명가’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지난 300년 동안 안디옥에서 로마까지, 에베소에서 북아프리카까지 수많은 공동체가 예배 중에 읽으며 눈물을 흘리고 삶을 변화시켰던 문헌들의 ‘데이터’를 수집한 ‘아카이빙 전문가’에 가까웠습니다. 그는 성도들의 삶에서 이미 ‘정경’으로 기능하고 있던 책들을 목록이라는 형식으로 백업한 것입니다.
즉, 이 서신은 하늘에서 내린 칙령이 아니라, 오랜 시간 현장에서 검증된 진리를 향한 공동체의 거대한 목소리를 정갈하게 대변한 보고서였습니다.
3. 지혜로운 3단계 분류: 독을 거르고 영양분을 나누는 큐레이션
아타나시우스는 당시 쏟아져 나오던 영지주의자들의 모호한 신비주의 문서들로부터 성도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실존적인 압박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교한 3단계 분류 시스템을 가동했습니다.
첫째는 신앙의 뼈대가 되는 ‘구원의 우물’인 정경(Canonical)입니다.
둘째는 정경은 아니지만, 이제 막 신앙을 시작한 입문자들에게 도덕적 감화를 주는 읽을 만한 책(Anagignoskomena)입니다. 여기에는 『디다케』나 『헤르마스의 목자』 같은 책들이 포함되어, 정경의 권위는 주지 않되 그 교육적 가치는 충분히 존중했습니다.
셋째는 공동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출처 불명의 위경(Apocryphal)입니다.
이러한 층위의 구분은 진리를 향한 배타적인 검열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를 살리는 진짜 양식인지를 가려내려는 따뜻한 목회적 배려였습니다.
4. 기적 같은 일치: 흩어졌던 세계가 하나의 목록으로 응답하다
아타나시우스의 목록은 이집트를 넘어 온 기독교 세계로 번번이 퍼져나갔습니다. 놀라운 점은 서기 393년 히포 공의회와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 등 서방 교회의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아타나시우스가 제시한 27권의 목록이 거의 그대로 수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초고속 통신망이 있던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로마의 제로니무스(계로니모)와 아우구스티누스 같은 거장들이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넘어 아타나시우스의 목록에 고개를 끄덕인 것은, 그 27권의 텍스트가 지닌 내재적 권위와 보편성이 이미 모든 공동체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었음을 방증합니다.
결국 성경 27권의 완성은 정치적 기획의 결과가 아니라, 인류가 지켜온 가장 고결한 가치들이 스스로 증명해낸 거대한 합의의 신비였습니다.
내 삶의 흩어진 가치를 ‘정리’하는 힘
아타나시우스의 서신이 성경의 역사를 정돈했듯, 우리 역시 삶의 수많은 파편 속에서 진정한 본질을 가려내는 정리의 지혜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1. 선택의 부담을 줄이는 정제의 지혜
우리는 너무 많은 선택지 앞에서 오히려 길을 잃곤 합니다. 아타나시우스가 27권이라는 명확한 목록을 제시하여 공동체의 에너지를 집중시켰듯, 여러분의 삶에서도 불필요한 선택지를 과감히 덜어내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내가 정말로 소중히 여겨야 할 ‘내 인생의 27권’은 무엇인지, 그 핵심 가치를 명문화하는 것만으로도 삶의 방향은 놀라울 정도로 선명해질 것입니다.
2. 내 삶의 ‘상수’와 ‘변수’를 구분하십시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삶의 원칙을 ‘정경’으로 두고, 시대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식들을 ‘읽을 만한 책’으로 분류해 보십시오. 모든 것을 절대적인 원칙으로 삼으려 하면 삶이 경직되고, 모든 것을 가변적인 것으로 두면 삶이 표류하게 됩니다. 이 층위의 질서를 세우는 것이야말로 지적인 어른으로 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 됩니다.
3.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일관된 태도입니다
아타나시우스가 성경 목록을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매년 잊지 않고 편지를 보내며 공동체와 소통했던 일관성 덕분이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 목표나 가치관도 단 한 번의 결심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주기적으로 나 자신에게 ‘축제 서신’을 쓰듯 현재의 위치를 점검하고 정리해 나가는 꾸준한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 정갈한 과정이 쌓일 때, 비로소 여러분의 삶은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되는 한 권의 완성된 고전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성경이라는 서가는 이제 그 마지막 칸까지 정갈하게 채워졌습니다. 그 풍성한 기록의 숲을 묵묵히 걸어가며 지혜의 열매를 거두는 일은 이제 오롯이 우리의 몫으로 남았습니다.
참고 문헌 및 더 깊이 읽기
지혜의 도슨트 '기다리는 폴'이 글의 뼈대로 삼은 학술적 근거들입니다.
David Brakke, Athanasius and the Politics of Asceticism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아타나시우스의 축제 서신이 당시 이집트 교회의 신앙 교육과 정체성 확립에 어떤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사회사적으로 분석한 탁월한 연구서입니다.Bruce M. Metzger,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Its Origin, Development, and Significance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아타나시우스의 서신이 성경 목록 확정 과정에서 차지하는 독보적인 위치와 그 신학적 의미를 상세히 기술하고 있습니다.Lee Martin McDonald, The Biblical Canon: Its Origin, Transmission, and Authority (Hendrickson Publishers, 2007).
성경 형성이 '결정'이 아닌 '수용'의 과정이었음을 강조하며, 아타나시우스 이후 로마와 카르타고 공의회로 이어지는 합의의 과정을 입증합니다.Athanasius of Alexandria, 39th Festal Letter (367 AD).
신약 27권의 목록을 명확히 제시하고 문헌의 층위를 나눈 인류사의 핵심적인 1차 사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