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토리 단편이 보여준 ‘정경의 과도기’: 성경 목록은 이렇게 시작됐다
낡은 상자 속에서 발견한 어느 수집가의 목록 집안 대청소를 하다가 아주 오래된 상자 하나를 발견했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그 안에는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 모으셨던 수많은 레코드판과 함께, 누렇게 변색된 종이 한 장이 들어 있습니다. 그 종이에는 할아버지가 정성껏 휘갈겨 쓴 ‘나의 애청곡 목록’이 적혀 있습니다. 이 목록을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들을 알게 됩니다. 어떤 곡은 제목 옆에 커다란 별표가 그려져 있고, 어떤 곡은 제목만 적힌 채 지워져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종이 한 장을 통해 할아버지가 당시 어떤 음악을 진리로 여겼는지, 그리고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자신의 음악 세계를 구축하려 했는지 그 ‘취향의 설계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역사에도 이와 똑같은 역할을 하는 유물이 있습니다. 바로 18세기 이탈리아의 학자 무라토리가 발견한, 8세기의 낡은 사본 속에 숨겨져 있던 2세기경의 기록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무라토리 단편’이라 부릅니다. 이는 완성된 성경의 모습은 아니지만, 초대 교회가 수많은 문서 사이에서 무엇을 ‘우리 것’으로 묶으려 했는지 그 치열한 고민의 흔적이 담긴 인류 최초의 성경 목록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