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녹서는 왜 에티오피아에선 ‘성경’일까: 정경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법
어느 마을의 오래된 가업과 그 지역의 보물 어느 산골 마을에 대대로 내려오는 특별한 비법의 장(醬)이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마을 사람들에게 그 장은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보물이며, 모든 식탁의 중심을 잡아주는 ‘표준’입니다. 하지만 이웃 마을이나 도시 사람들에게 그 장은 그저 독특한 풍미를 가진 하나의 ‘지역 음식’일 뿐, 자신들의 식단을 정의하는 핵심 요소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장이 ‘가짜’라거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 가치를 알아보고 보존해 온 공동체의 역사와 맥락이 다를 뿐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성경의 역사도 이와 비슷합니다. 우리는 대개 66권 혹은 73권이라는 ‘전 세계 공통의 목록’만을 정경이라 생각하지만, 지구 반대편 어느 곳에서는 우리가 외경(Apocrypha)이라 부르는 책을 수천 년간 정경으로 소중히 읽어온 이들이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에녹서(1 Enoch)』 입니다. 서구와 비잔틴 전통에서는 성경 밖으로 밀려났지만, 에티오피아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당당히 성경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정경이 결코 단일한 박제물이 아니라 공동체의 고유한 숨결이 빚어낸 ‘다양한 진리의 얼굴’임을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