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와 서머나 교회로 배우는 초대교회의 재림 신앙
에베소와 서머나 교회: 재림을 기다린 공동체
초대교회의 재림 신앙은 단순한 종말론적 사상이 아니라, 박해와 고난 속에서도 일상을 살아내는 구체적인 삶의 태도였습니다. 요한계시록 2~3장에는 일곱 교회가 언급되지만, 그중에서도 에베소와 서머나 교회는 재림의 소망을 실천적으로 살아낸 대표적인 공동체로 주목할 만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초기 교회의 모범적인 교리적 확립과 열정적인 사역을 통해 '진리를 지키는 공동체'로 자리 잡았고, 서머나 교회는 극심한 박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순교적 신앙의 전형'을 보여주었습니다. 두 교회 모두 요한계시록의 메시지에서 중요한 대조적 의미를 지니며, 초대교회 전체가 어떻게 재림 신앙을 현실 속에서 살아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는 일곱 교회 중에서도 이 두 교회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재림 신앙이 공허한 이상이나 두려움의 서사가 아닌, 매일의 삶 속에서 실천되고 견뎌낸 신실한 고백임을 드러내고자 합니다.
에베소 교회: 첫사랑을 회복하라
에베소는 로마 제국의 아시아 주에서 가장 번영했던 상업 도시 중 하나로, 인구 약 25만 명에 달하는 대도시였습니다. 도시 한복판에는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히는 아르테미스 신전(다이아나 사원)이 자리하고 있었고, 이는 로마 제국 전역에서 순례객과 상인들을 끌어들이는 종교적·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3년간 머물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행 19:1-10). 바울의 사역으로 인해 아르테미스 신상 제작업자들의 수입이 급감하자, 데메드리오라는 은장색 장인이 선동한 소요사건(에베소 소동)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사도 요한 역시 에베소에서 사역하며 교회를 돌보았다는 전승이 전해집니다.
에베소 교회는 교리적 분별력과 거짓 사도를 배격하는 데 탁월했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계 2:4)는 책망을 받습니다. 이는 재림을 소망하는 신앙이 단순한 교리적 지식이나 형식적 열심에 머물지 않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음을 보여줍니다.
에베소 교회는 외적인 사역과 진리 수호에 충실했지만,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인의 본질인 '첫사랑'—하나님과의 깊은 사랑과 교제—을 회복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이는 초대교회가 당면했던 '형식적 신앙'이라는 위험성을 경계하게 하며,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도전입니다.
서머나 교회: 죽도록 충성하라
서머나는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 지역으로, 초대교회 시절 로마 황제 숭배가 강요되던 도시였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서머나 교회는 “환난과 궁핍을 알지만, 실상은 부요한 자”(계 2:9)라고 칭찬받습니다. 비록 외적으로 가난하고 박해받는 상황이었지만, 서머나 교회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재림의 소망을 지켰습니다.
특히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캅(Polycarp)은 86세의 나이에 순교하면서도 “86년 동안 주님을 섬겨왔는데, 어찌 주를 배반하랴”고 고백했습니다.
여기서 '감독'은 오늘날 교회의 '주교(Bishop)' 또는 '목회자'에 해당하는 직분으로, 초대교회에서는 지역 교회를 영적·조직적으로 돌보는 리더를 의미했습니다. 당시 '목사'라는 호칭은 일반적이지 않았고, '감독(에피스코포스, episkopos)'이 사도들의 후계자로서 공동체를 섬기는 직분이었습니다.
폴리캅은 서기 69년경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며, 오늘날 터키 지역인 고대 서머나(이즈미르)에서 사역했습니다. 그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는 전승이 있으며, 초대교회 사도적 전통을 계승한 중요한 인물로 평가받습니다.
서기 155년경, 로마 제국의 박해 아래 폴리캅은 서머나 원형경기장에서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심문을 받는 자리에서도 그는 “내가 86년을 그분을 섬겨왔는데, 어찌 나의 왕을 모독할 수 있겠는가”라며 신앙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의 죽음은 서머나 교회의 재림 신앙이 단순한 이론이 아닌, 목숨을 건 신앙의 고백임을 보여주며, 이후 순교자 문헌(Martyrdom of Polycarp)으로 기록되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큰 영적 유산이 되었습니다.
박해 속에서도 재림을 소망했던 이유
초대교회는 로마 제국의 탄압, 사회적 차별, 경제적 박해 속에서도 재림을 소망했습니다. 로마는 황제 숭배를 거부하는 기독교인들을 반국가적 존재로 간주했고, 이에 따라 조직적 박해가 가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네로 황제는 64년 로마 대화재의 책임을 기독교인들에게 전가하며 그들을 잔혹하게 처형했습니다.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거나, 십자가에 못 박혀 화형을 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에는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자는 죽음으로 다스린다'는 원칙이 적용되어, 무고한 신앙인들이 묵묵히 순교의 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또한 서머나 교회의 폴리캅처럼, 신앙을 지키기 위해 생명을 바친 인물들의 순교는 초대교회 공동체에 깊은 울림을 주었습니다.
경제적 차별 역시 심각했습니다. 길드(직업조합)와 상업 활동이 황제 숭배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에, 신앙 양심상 황제를 신으로 경배하지 않는 자들은 생계 수단을 박탈당하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되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난하지만 부요한 자'(계 2:9)라는 역설적 상황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하루하루를 견뎠습니다. 재림의 소망은 그들에게 도피처가 아닌,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었습니다. 억압과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작은 친절과 사랑의 실천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드러내는 삶이었습니다.
“일상의 신실함”이 재림 신앙의 핵심
초대교회의 재림 신앙은 극단적 종말론이나 현실 도피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매일의 삶 속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세였습니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는 고백은 먼 미래를 기다리는 말이 아니라, 오늘 내 삶 속에서 그분을 모시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도 초대교회의 신앙을 본받아야 합니다. 화려한 종말론적 담론보다, 매일의 삶 속에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주님이 다시 오실 그날을 소망하는 삶. 그것이 참된 재림 신앙입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계 2:10)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기다리는 폴(Paul of Await)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