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은 권력이 아니라 ‘잣대’입니다: 진리를 가려내는 4가지 기준

당신의 삶을 측정하는 ‘표준’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일상에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측정하며 삽니다. 요리할 때 들어가는 소금의 양을 저울로 달고, 집의 가구를 배치하기 위해 줄자로 길이를 잽니다. 이때 우리가 사용하는 저울과 줄자는 반드시 ‘표준’에 맞아야 합니다. 만약 사람마다 사용하는 1kg의 무게가 다르고, 1m의 길이가 제각각이라면 세상은 금세 거대한 혼란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인간의 기억과 정신의 세계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정보와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중 어떤 것이 진실인지, 어떤 가치를 내 삶의 중심에 두어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옵니다. 이때 우리에게는 내 삶의 방향이 틀어지지 않았는지 확인해 줄 ‘기준점’이 필요합니다.

성경의 역사에서도 이와 같은 ‘기준점’을 세우는 치열한 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정경(Canon)’이라 부릅니다. 수천 개의 글이 넘쳐나던 시대, 무엇이 진짜 진리이고 무엇이 곁가지인지를 가려내기 위해 고대인들이 들었던 ‘잣대’는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우리는 그 선택의 논리를 따라가 보려 합니다.

정경은 통제가 아니라 진리를 지키는 검증 기준이었습니다.

진리를 가려내는 ‘거룩한 필터링’의 현장

1. ‘카논(Kanon)’의 여정: 목수의 자에서 성경의 목록이 되기까지

‘정경’을 뜻하는 영어 단어 ‘캐논(Canon)’은 고대 헬라어 ‘카논(Kanon)’에서 유래했습니다. ‘카논’은 본래 늪지대에서 자라는 곧은 갈대 막대기를 뜻했습니다. 고대 목수들이 건물을 지을 때 수평을 맞추거나 길이를 재던 이 ‘자(尺)’가 어떻게 성경의 이름이 되었을까요? 

이 단어를 신앙의 영역으로 처음 가져온 이는 사도 바울이었습니다. 그는 갈라디아서에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규범’을 설명하며 이 단어를 썼습니다. 이후 4세기경, 알렉산드리아의 주교 아타나시우스가 처음으로 우리가 읽어야 할 성경의 ‘확정된 목록’을 가리켜 ‘카논’이라 명명했습니다. 

즉, 수많은 글 중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재어보는 ‘절대적인 표준 자’라는 의미가 문학적 명칭으로 굳어진 것입니다.

2. 역사적 혼란: 왜 가짜 뉴스 같은 ‘위경’들이 판을 쳤는가?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말 그대로 ‘텍스트의 홍수’ 속에 있었습니다. 도마 복음, 마리아 복음, 베드로 묵시록 같은 책들이 곳곳에서 읽혔습니다.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왜 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아닌 유명한 사도의 이름을 빌려 글을 썼을까요? 

당시 고대 세계에는 ‘저자 가명성(Pseudonymity)’이라는 독특한 문화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주장에 권위를 높이기 위해 존경받는 인물의 이름을 빌리는 방식입니다. 

특히 ‘영지주의(Gnosticism)’라 불리는 집단들은 자신들만의 비밀스러운 지식을 전파하기 위해, 대중에게 신뢰받는 베드로나 도마의 이름을 도용하여 가짜 복음서를 양산했습니다. 이들은 이를 통해 공동체의 주도권을 잡거나, 자신들의 독특한 철학을 기독교의 정통 가르침인 양 위장하려 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유명 인사를 사칭한 가짜 뉴스’가 진리를 위협하던 절박한 상황이었던 셈입니다.

3. 인물 가이드: ‘초기 교부’와 이레네우스는 누구인가? 

이런 혼란 속에서 방어선을 구축한 이들이 바로 ‘교부(Church Fathers)’들입니다. 교부란 사도들의 뒤를 이어 초기 교회의 기틀을 잡고 신학적 체계를 세운 ‘신앙의 아버지’ 같은 스승들을 일컫습니다. 

그중에서도 이레네우스(Irenaeus, 130~202년경)는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그는 오늘날 프랑스 리옹의 주교로 활동하며 이단들의 공격으로부터 교회를 지켰던 ‘진리의 파수꾼’이었습니다. 

그는 사도들로부터 직접 배운 스승들의 가르침(전승)을 보존하려 애썼고, 무엇이 진짜 복음인지 가려내기 위한 ‘믿음의 법칙’을 세웠습니다. 그에게 정경화 작업은 단순히 책을 고르는 일이 아니라, 공동체의 ‘생존’이 걸린 절체절명의 과제였습니다.

4. 선택의 잣대: 네 가지 검증 시스템과 탈락의 사연들 

교부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엄격한 잣대로 글들을 검증했습니다. 이 기준을 통과하지 못한 글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 사도성(Apostolicity): 예수의 목격자인 사도나 그 직계 제자의 글인가?

    • 탈락 사례: ‘헤르마스의 목자’라는 글은 당시 매우 인기 있었고 내용도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저자인 헤르마스가 사도 시대 이후의 인물(로마 주교 피우스의 형제)임이 밝혀지면서 ‘사도성’ 결여로 정경에서 제외되었습니다.

  • 정통성(Orthodoxy): 사도들이 전해준 핵심 교리와 일치하는가?

    • 탈락 사례: ‘베드로 복음’은 한때 일부 지역에서 읽혔으나, 예수가 십자가에서 실제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는 ‘가현설(Docetism)’적 요소가 발견되었습니다. 이는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핵심 교리에 어긋나 ‘정통성’ 미달로 탈락했습니다.

  • 고대성(Antiquity): 최근에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 초기부터 존재했는가?

    • 탈락 사례: ‘도마 복음’은 2세기 중반 이후에나 등장한 후대의 저작임이 밝혀졌습니다. 사도 시대와의 시간적 간극이 너무 컸기에 ‘고대성’ 기준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 보편성(Catholicity): 전 세계 모든 공동체에서 두루 인정받는가?

    • 탈락 사례: ‘바나바 서신’은 특정 지역에서는 권위를 인정받았으나, 전체 교회 공동체의 보편적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하여 정경의 울타리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5. 경계 너머의 글들: 외경과 위경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정경의 울타리 밖에 있는 글들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뉩니다. 구약 성경의 일부로 인정되기도 하는 ‘외경(Apocrypha)’과, 저자를 사칭한 ‘위경(Pseudepigrapha)’입니다. 이 책들을 읽는 것이 잘못된 일일까요? 

‘기다리는 폴’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이 책들을 ‘진리의 절대 표준(Canon)’으로 삼기에는 위험하지만, ‘역사의 창문’으로 보기에는 훌륭한 자료입니다. 정경이 되지 못한 글들을 읽을 때는 다음과 같은 팁을 기억하십시오.

  • 배경지식으로 읽기:
    당시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했고, 어떤 잘못된 생각들이 유행했는지 이해하는 역사적 자료로 활용하십시오.

  • 분별의 훈련:
    정경(66권)과 비교하며 읽어보십시오. 왜 이 글들이 최종 선택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 ‘결’의 차이를 느껴보는 것은 오히려 정경의 소중함을 깨닫는 좋은 훈련이 됩니다.

  • 중심 잡기:
    마치 설계도를 먼저 완벽히 숙지한 뒤에 인테리어 소품을 구경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경이라는 든든한 뼈대를 먼저 세운 뒤에 이 글들을 접한다면, 혼란에 빠지지 않고 풍성한 인문학적 식견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삶에는 어떤 ‘카논’이 있습니까?

고대인들이 진리를 지키기 위해 ‘정경’이라는 잣대를 세웠듯, 우리 역시 정보가 범람하는 시대 속에서 나만의 잣대를 세워야 합니다.

1. 나만의 ‘믿음의 법칙’을 문장화하십시오 (Define Your Rule)

서기관들이 정통성의 기준을 세웠듯, 여러분 삶의 최우선 순위가 되는 가치 3가지를 명확한 문장으로 적어보십시오. 이것이 여러분 삶의 ‘카논’이 됩니다. 기준이 명확할 때, 우리는 외부의 유혹이나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흔들리지 않고 본질을 지켜낼 수 있습니다.

2. ‘보편적 가치’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Check for Catholicity)

내가 가진 생각이 혹시 나만의 아집은 아닌지 점검해 보십시오. 성경의 보편성 기준처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지혜인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진리는 고립된 곳이 아니라, 보편적인 소통과 검증의 마당에서 더욱 단단해집니다.

3. ‘뿌리 깊은 지혜’를 우선하십시오 (Value Antiquity)

오늘 유행하는 자극적인 정보보다는, 오랜 시간 검증된 고전이나 역사의 지혜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해 보십시오. 새로운 것이 반드시 더 나은 것은 아닙니다. 고대성이라는 잣대가 정경을 보호했듯, 검증된 지혜는 여러분의 삶을 더 깊고 안정감 있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정경은 단순한 목록이 아니라, 소중한 것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고대인들의 ‘간절한 줄자’였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이라는 도서관에도, 어떤 바람에도 휘지 않는 곧은 잣대 하나를 정성껏 마련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문헌 및 더 깊이 읽기

지혜의 도슨트 '기다리는 폴'이 글의 뼈대로 삼은 학술적 근거들입니다.

  • Bruce M. Metzger, The Canon of the New Testament: Its Origin, Development, and Significance (Oxford University Press, 1987).

    • 정경화 과정의 역사적 기준과 변천사를 다룬 가장 권위 있는 학술 자료 중 하나입니다. 본문에서 언급한 '4대 잣대'의 핵심 근거가 됩니다.

  • F. F. Bruce, The Canon of Scripture (InterVarsity Press, 1988).

    • 구약과 신약이 어떻게 '카논'으로서의 권위를 얻게 되었는지에 대한 논리적 과정을 상세히 설명합니다.

  • Karel van der Toorn, Scribal Culture and the Making of the Hebrew Bible (Harvard University Press, 2007).

    • 유대 공동체가 포로기 이후 정경의 범위를 어떻게 획정했는지에 대한 사회사적 분석을 제공합니다.

  • Bart D. Ehrman, Lost Christianities: The Battles for Scripture and the Faiths We Never Knew (Oxford University Press, 2003).

    • 도마 복음, 베드로 묵시록 등 정경에서 탈락한 문헌들이 왜 당시 인기가 있었고, 왜 결국 제외되었는지에 대한 흥미진진한 역사적 배경을 제공합니다.

  • Michael J. Kruger, Canon Revisited: Establishing the Origins and Authority of the New Testament Books (Crossway, 2012).

    • '사도성'과 '보편성' 등 정경의 기준이 단순히 교회의 권력 투쟁이 아닌, 내적 일관성과 역사적 팩트에 근거했음을 논리적으로 변증하는 최신 연구서입니다.

  • Athanasius of Alexandria, 39th Festal Letter (367 AD).

    • 27권의 신약 목록을 오늘날과 똑같이 처음으로 확정하며 '카논'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아타나시우스 주교의 실제 편지 기록(1차 사료)입니다.

  • Irenaeus of Lyons, Adversus Haereses (Against Heresies).

    • 초기 교부 이레네우스가 이단들의 가르침에 맞서 '사복음서'의 정통성을 어떻게 방어했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문헌입니다.

 

함께 보면 좋은 인기 글

요한계시록의 저자, 요한은 누구인가? 사도 요한의 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