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무섭게 느껴질 때, 두려움 없이 읽는 법

두려움은 ‘성경의 문제’가 아니라 ‘읽히는 방식’의 문제일 때가 많습니다

하루를 조금 차분하게 시작하고 싶어서 성경을 펼쳤던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마음을 가다듬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보려 했는데, 몇 절을 읽지 않아 ‘심판’, ‘진노’, ‘경고’ 같은 단어를 마주하며 마음이 무거워지는 순간 말입니다.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 위로나 평안을 얻고 싶어 성경을 읽다가 오히려 생각이 많아져 쉽게 잠들지 못한 경험도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성경을 잘못 읽고 있는 건 아닌지, 혹은 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매우 흔하며, 개인의 믿음이 약해서 생기는 현상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성경에는 분명 마음을 어루만지는 구절들도 많지만, 동시에 경고와 심판, 하나님의 질투와 엄격한 율법, 그리고 폭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 장면들도 적지 않게 등장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런 구절들을 만났을 때, 그것을 삶을 바로 세우기 위한 이야기로 받아들이기보다, 나를 평가하고 판결하는 문장처럼 느끼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러면 성경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책이 아니라, 점수를 매기는 시험지처럼 다가옵니다. 

하지만 성경은 원래, 사람을 몰아붙이기 위해 기록된 책이라기보다, 흔들리는 삶 한가운데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붙들어 주기 위해 쓰인 기록입니다. 이 출발점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성경을 읽는 공기는 눈에 띄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성경이 무섭게 느껴지는 이유를 ‘심리’와 ‘맥락’으로 풀어, 선동 없이 차분하게 읽는 첫걸음을 안내합니다.

위기 속에서 태어난 말은, 위기 속에서 사람을 살리는 방식으로 읽혀야 합니다

성경에는 마음을 흔드는 이미지가 적지 않습니다. 전쟁과 포로, 제국의 폭력, 공동체의 붕괴 같은 현실이 본문 곳곳에 스며 있습니다. 

바빌론에 의해 나라를 잃고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로마 제국의 압도적인 군사력 아래에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던 공동체에게 성경의 언어는 추상적인 교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내기 위해 붙들어야 할 마지막 의미였고, 무너지는 삶을 간신히 지탱해 주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강한 표현과 거친 이미지는 종종 누군가를 겁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이미 두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폭력이 전부가 아니다”, “지금의 질서가 영원하지 않다”라고 말하기 위한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짐승과 전쟁, 심판의 언어는 공포를 키우기 위한 묘사가 아니라, 눈앞의 제국과 불의를 상대화하고, 그 너머에 다른 현실이 있음을 보여 주는 상징이었습니다.

이 지점을 놓치면 우리는 본문의 초점을 쉽게 잃어버립니다. 공동체 전체를 향해 주어진 메시지를 오늘의 개인에게 보내진 운명표처럼 읽고, 상징과 이미지를 지금 벌어지는 사건의 예고편처럼 끌어다 맞추게 됩니다. 그러면 성경은 더 이상 삶을 버텨내게 하는 언어가 아니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재난을 알려주는 경보처럼 들립니다. 

성경이 본래 의도했던 위로와 방향 제시는 사라지고, 두려움만이 앞에 남게 됩니다. 이런 전환이 반복될 때, 성경은 사람을 살리는 책이 아니라 부담을 안기는 책처럼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심판’은 정죄만이 아니라, 무너진 질서를 다시 세우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현대의 독자들이 ‘심판’이라는 단어에서 느끼는 불편함은 단순히 처벌에 대한 두려움만은 아닙니다. 많은 경우 그보다 앞서 떠오르는 감정은, 내가 판단의 대상이 되고 통제의 시선 아래 놓인다는 느낌입니다. 

성경을 읽다가 심판과 진노의 언어를 만날 때, 사람들은 이렇게 묻기 시작합니다. “내가 그렇게까지 크게 잘못한 걸까?”, “왜 이런 말을 들어야 하지?”, “혹시 나에게 뭔가 근본적인 결함이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은 신앙을 깊게 하기보다, 자신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계속 평가하게 만듭니다.

일상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우리는 자주 합니다. 누군가가 늘 잘못을 지적하고, 결과를 먼저 따지며, 언제든 평가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 사람은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로 기울기 쉽습니다. 

하나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검열하며 위축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어차피 해도 혼나는데”라는 마음으로 관계에서 아예 멀어져 버리는 길입니다. 항상 처벌을 예상하며 살아가는 태도는 어떤 이에게는 더 조심스럽게 살겠다는 결심으로 작동할 수 있지만, 또 다른 이에게는 포기와 냉소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성경의 ‘심판’ 언어를 오직 정죄의 도구로만 받아들이면, 하나님은 늘 잘못을 찾아내는 감시자처럼 상상되기 쉽습니다. 그런 하나님 이미지는 신앙을 자라게 하기보다 마음을 움츠러들게 하고, 관계를 불안정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심판은, 억울함이 풀리지 않고 악이 힘을 갖는 상황 속에서 세계가 다시 바로 서는 것을 가리키는 언어이기도 합니다. 심판은 언제나 ‘떨어뜨리기’보다 ‘바로잡기’를 향해 말해졌다는 점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심판 구절을 읽을 때에는, 그 말이 누구에게, 어떤 상황 속에서, 무엇을 바로 세우기 위해 주어졌는지를 먼저 살피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맥락을 건너뛰지 않을 때, 심판의 언어는 더 이상 우리를 몰아붙이는 소리가 아니라, 무너진 삶과 관계를 다시 세우기 위한 경고이자 방향 제시로 읽히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이 자라나는 길은 대체로 비슷합니다

두려움은 대개 ‘이미 불안한 마음’과 ‘강한 이미지’가 맞닿을 때 커집니다. 현실이 불안할수록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더 빨리 떠올리고, 강한 표현을 더 직접적인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여기에 성경 읽기의 방식이 더해지면, 두려움은 한층 더 빠르게 자라납니다.

특히 성경을 혼자 읽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본문을 함께 해석해주던 공동체적 틀은 점점 희미해집니다. 초심자에게 성경은 낯선 세계관과 언어로 가득 찬 책이기 때문에, 몇 장만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자연스럽게 쌓이기 마련입니다. 그 상태에서 ‘이 말은 무슨 뜻일까’라는 질문을 붙든 채 혼자 읽다 보면, 본문은 차분히 이해되는 이야기라기보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요즘은 여기서 곧바로 온라인으로 해석을 찾아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만나는 설명들은 매우 다양합니다. 어떤 것은 맥락을 차분히 설명해 주지만, 어떤 것은 단정적인 결론과 강한 확신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건 이런 뜻이다”, “지금 시대에 반드시 일어날 일이다”, “이 징조를 알아보지 못하면 위험하다” 같은 말들은, 불확실한 마음을 잠시 붙잡아 주는 대신 오히려 더 큰 불안을 남기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극적이고 비약적인 해석이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하면, 성경은 더 이상 시간을 들여 이해해야 할 책이 아니라, 지금 당장 결론을 내려야 하는 책처럼 느껴집니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 성경 읽기는 점점 숨 가쁜 일이 됩니다. 본문을 곱씹고 질문을 남길 여유는 사라지고, ‘이게 무슨 경고일까’, ‘나는 안전한 쪽에 속해 있는 걸까’ 같은 생각이 앞서게 됩니다. 성경이 삶을 비추는 등불이 아니라, 끊임없이 점검해야 할 신호등처럼 다가오는 순간입니다.

이때 중요한 질문이 하나 생깁니다. 정말로 성경이 나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이미 불안과 조급함에 몰아붙여진 상태로 성경을 읽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는 일입니다. 

성경은 종종 우리의 속도를 늦추고, 결론을 서두르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빨리 판단하라’가 아니라 ‘먼저 이해하라’가 성경 읽기의 기본 자세가 될 때, 두려움은 조금씩 제자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성경을 다시 읽기 위한 첫걸음은 ‘정답’이 아니라 ‘맥락’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더 강한 결심이나 더 많은 정보가 아니라, 본문을 둘러싼 맥락을 천천히 살피려는 여유입니다. 본문이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어떤 사람들을 향해 기록되었는지를 조금만 가까이 두어도 성경의 문장은 전혀 다른 결로 다가옵니다. 그 순간 성경은 더 이상 지금의 나를 평가하고 판정하는 문서가 아니라,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곁에 놓아두는 기록처럼 읽히기 시작합니다.

맥락을 살핀다는 것은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뜻도, 곧바로 답을 얻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당장 이해되지 않는 구절을 잠시 그대로 두고, 그 말이 처음 울려 퍼졌던 자리와 시간을 상상해 보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그렇게 읽을 때 성경의 강한 표현들은 즉각적인 위협이 아니라, 오래된 질문과 고통 속에서 나왔던 언어로 자리를 찾습니다.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논쟁으로 불안을 눌러버리지 않아도, 두려움은 서서히 힘을 잃습니다.

성경을 다시 읽는다는 것은 결국 ‘정답을 확보하는 일’이 아니라, 이 책과 어떤 거리에서 마주 설 것인지를 정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너무 가까이 붙어 서서 모든 문장을 나에게 직접 쏟아지는 말처럼 들을 필요도 없고, 멀찍이 밀어내며 외면할 이유도 없습니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맥락 속에서 읽을 때, 성경은 우리를 몰아붙이는 책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천천히 비추는 동반자로 남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기다리는 폴(Paul of Await)”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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